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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13동의 괴담과 침묵

조회수 4,860 · 글자수 1530자 · 발행 2026.10.07 08:25

1층 복도 안쪽, 칠이 벗겨진 콘크리트 문틀 사이로 승강기 호출 버튼의 주황색 플라스틱 등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현대식 LED가 아닌, 1990년대 아파트 특유의 조잡한 주황빛 방전 램프였다.

유리관 안쪽의 필라멘트가 전압 불안정으로 지직거리며 내는 쇳소리는, 마치 좁은 병 속에 갇혀 죽어가는 말벌의 날갯짓처럼 음산하게 고막을 찔렀다.

버튼을 누르기 위해 뻗은 손가락 끝에 닿은 플라스틱 표면은 이상하게도 차가운 감촉 대신 미열을 품고 있었다.

고열에 들떠 밭은숨을 몰아쉬는 환자의 이마처럼 미지근하고 불쾌한 체온. 딱딱한 껍질 밑바닥에서 미세하게 쿵, 쿵 뛰는 맥박 같은 고동이 손가락 지문을 타고 전해졌다.

기철은 불쾌한 전율을 억누르며 호출 버튼을 깊숙이 눌렀다.

이 13동의 엘리베이터에는 주민들 사이에 금기처럼 떠도는 불길한 괴담이 하나 있었다.

10여 년 전,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던 늦여름 밤, 7층과 8층 사이의 허공에서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춰 서며 탑승했던 30대 회사원 박진우 씨가 감쪽같이 증발해 버린 사건이었다.

당시 비상벨이 7분 이상 요란하게 울려 출동한 구조대가 7층과 8층 슬래브 사이에 걸린 문을 강제로 뜯어냈을 때, 내부에는 탑승객 대신 뒤집혀 꺾인 장우산 한 자루와 벗겨진 구두 한 짝만이 뒹굴고 있었다.

조작 패널에는 손톱이 뒤집혀 피와 살점이 엉겨 붙은 열 줄기의 핏자국이 남아 있었는데, 기괴하게도 그 흔적은 바닥에서 천장 쪽으로 거칠게 치솟아 있었다.

바닥의 손목시계는 유리알이 깨진 채 초침이 거꾸로 회전하고 있었고, 119 상황실에 접수된 박진우의 마지막 통화는 유리를 손톱으로 긁어대는 소음과 함께 3초 만에 끊어졌다.

제2장: 13동의 괴담과 침묵 삽화
▲ 제2장: 13동의 괴담과 침묵 장면 삽화

"나 아직 여기 갇혀 있어…… 나를 꺼내줘……"

사건 직후 승강로 벽체에서 발견된 30년 전 안전 검사관의 수기 메모는 더욱 흉흉했다.

『7층과 8층 사이에서 강철 레일이 맞닿아 허공 속으로 사라짐. 사람이 타서는 안 될 것이 벽 너머에서 승강기를 부르고 있음. 당장 통로를 폐쇄해야 함.』

하지만 관리주체는 이를 묵살했고, 좁은 내부의 답답함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좌우 벽면에 마주 보는 거대한 전신 거울 두 장을 설치했다.

거울 교체 작업을 맡았던 인부들은 한밤중에 작업을 마친 뒤 사색이 되어 도망쳤다고 했다.

"거울 안쪽 깊은 곳에서 누군가 유리를 두드리며 살려달라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는 뒷이야기와 함께.

"거울끼리 마주 보게 달아두면 거기로 귀신 길이 열린다는데, 관리소 놈들이 미친 거지……."

"저 거울 달리고 나서부터 밤마다 엘리베이터가 혼자 7층으로 올라가서 한참 동안 멈춰 있다 내려온다는 소문이 파다해. 8층 실종자도 식탁 위에 밥을 차려놓고 현관에 구두까지 얌전히 둔 채 승강기 앞에서 감쪽같이 증발했다잖아."

반상회 때 부녀회 노인들이 수군거리던 목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기철은 입꼬리를 비틀며 자조했다.

"도시괴담일 뿐이야.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미신이지. 다들 피곤하고 낡은 환경 탓에 뇌가 착각을 일으킨 거야. 그 사람도 빚더미에 앉아서 어딘가로 야반도주한 거겠지."

그때, 승강로 깊은 곳에서 굵은 와이어가 삐걱거리는 육중한 기계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
《거울 회랑의 죄수》 제2장: 13동의 괴담과 침묵 입니다. 숨 막히는 긴장감과 심리적 공포를 즐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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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목차

1화. 제1장: 만성적인 침식 무료 2화. 제2장: 13동의 괴담과 침묵 무료 3화. 제3장: 두 개의 문과 마주보는 유리 무료 4화. 제4장: 광학적 회랑 유료 5화. 제5장: 어긋난 프레임 유료 6화. 제6장: 불협화음의 연쇄 유료 7화. 제7장: 무한의 끝자락 유료 8화. 제8장: 응시하는 자 유료 9화. 제9장: 7층과 8층 사이의 허공 유료 10화. 제10장: 수화기 너머의 숨소리 유료 11화. 제11장: 일제히 찢어지는 입 유료 12화. 제12장: 얼어붙은 유리벽 유료 13화. 제13장: 소멸한 좌표 유료 14화. 제14장: 유리의 저편 유료 15화. 제15장: 껍데기의 귀환 유료 16화. 제16장: 영원한 수형자 유료 17화. 제17장: 1402호의 문 유료 18화. 제18장: 거울 속의 미소 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