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을 훌쩍 넘겨 새벽 1시 20분.
기철은 덜컹거리는 심야 막차 버스의 손잡이를 놓고, 낡은 아파트 단지 앞 정류장의 축축한 보도블록 위에 구둣발을 내디뎠다.
버스는 짙은 디젤 매연을 밤안개 속에 흩뿌리며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갔고, 정류장에는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만이 메마르게 남았다.
낡아 해진 가죽 구두 밑창의 틈새로 얼음장 같은 빗물이 스며들어와 발가락 끝부터 뼈마디까지 시린 냉기를 퍼뜨렸다.
돌이켜보면 불길한 징후는 버스 안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시트 끝에 앉아 차갑게 김 서린 차창 유리창에 이마를 기댔을 때였다.
젖은 아스팔트 위의 가로등 불빛이 차창을 스칠 때마다, 유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기철의 시선과는 전혀 다른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서늘한 착시가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
피로에 지친 눈을 굴려 차창 밖 표지판을 쳐다볼 때조차, 김 서린 유리 너머의 까만 눈동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기철의 관자놀이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당시에는 그저 이중창의 난반사와 야근 피로 탓이라 넘겼지만, 유리창 표면에 맺힌 물방울을 타고 흘러내리던 반사상의 입꼬리는 마치 다가올 파멸을 내다보며 비웃는 듯 기괴했다.
지하철 2호선 막차를 타고 신도림역을 지날 때 보았던 기괴한 잔상도 떠올랐다.
열차가 급커브를 돌며 조명이 깜빡였던 찰나, 출입문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거울상이 홀로 눈을 부릅뜬 채 기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출입문 유리에 기대어 졸던 프로그래머가 눈을 떴을 때, 자신의 거울상이 승강장 바깥에서 떠나가는 열차를 향해 차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던 동료들의 괴담이 귓가에서 차갑게 맴돌았다.
하루 열네 시간씩 환기조차 되지 않는 가산디지털단지 지하 사무실에서, 세 대의 모니터가 뿜어내는 푸른빛을 응시해 온 지 벌써 7년째였다.

실핏줄이 터져 모래알이 굴러다니는 듯한 두 눈, 석고처럼 굳어버린 척추, 위장 속에서 역류하는 편의점 캔커피의 씁쓸한 잔여물.
신경정신과 의사는 심신 탈진으로 인해 자신과 세상이 분리되어 느껴지는 심각한 해리성 이인증이라 진단했지만, 처방된 알약 따위로 영혼 깊숙이 뚫린 공허를 메울 수는 없었다.
매일 아침 욕실 거울을 볼 때마다 마주치는 남자의 얼굴은 생소했고, 거울 속 남자는 자신보다 반 박자 늦게 눈을 깜빡이거나 입술을 삐죽이는 것 같았다.
'내가 정말 저 육체 안에 갇힌 유일한 자아인가? 만약 저 유리 너머의 형상이 진짜이고, 여기에 서 있는 내가 허상에 불과하다면?'
"……오늘도 어떻게든 살아남았군."
기철은 젖은 코트 깃을 여미며 13동 복도식 아파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지은 지 25년이 넘어 외벽 페인트가 허물처럼 벗겨진 15층짜리 복도식 건물은, 산 자의 온기라곤 없는 거대한 콘크리트 무덤처럼 침묵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현관 입구의 고장 난 센서등은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제멋대로 주황빛을 깜빡거렸고, 빗물에 젖은 로비 바닥 타일은 흑요석처럼 매끄러운 검은 수면을 이루고 있었다.
경비실 창문 너머 책상 위에는 누렇게 변색된 순찰 일지가 덩그러니 펼쳐져 있었다.
기철의 시선이 무심코 삐뚤빼뚤한 볼펜 글씨에 멎었다.
『새벽 순찰 중: 조작반 층수 표시등에 마이너스 7층, 마이너스 14층이 깜빡임. 14층 버튼이 혼자 눌렸다 꺼지기를 반복함. 승강기 내부에서 거울을 긁어대는 긁힘 소리 청취.』
그리고 그 아래, 검붉은 펜으로 짓이겨 쓰인 마지막 문장.
『그것이 거울 안에서 웃고 있다. 문을 열어주지 마라.』
스산한 한기가 목덜미를 스쳤다. 기철은 마른침을 삼키며 어두컴컴한 엘리베이터 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